스푸트니크!
2004. 4. 13. 16:15
혼자서 산에 올랐다. 집 가까이에 있는 계족산은 그다지 높지도 않아서 혼자 가볍게 오르기에 적당하다.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은 늘상 갖고 있는데 가까이에 산을 두고서도 언제나 먼데 큰산만을 꿈꿨던가 보다.
산에 오른다. 모자하나 눌러쓰고 입은 옷 그대로 출발했다. 날씨가 참 좋다. 산 밑둥 고추밭에서 고추모종을 심고 있는 노부부를 본다. 놀러다니기 좋은 계절. 농부들은 일손이 바빠지는 계절...
아- 우리 부모님도 지금쯤 고추모종을 옮겨 심느라 당신 얼굴의 주름같은 밭이랑을 갈고 계시겠구나. 봄볕에 그을려 그 주름이 더 깊이 패겠구나... 뉴스에선 나들이 인파로 막히는 도로와 북적대는 유원지의 풍경들이 나오고... 그 다음 장면으론 여지없이 바쁘게 일손을 놀리는 늙은 농부들을 보여준다. 세상은 참... 우리 엄마 아빠가 계셔서 삼겹살에 얹혀진 고추가 더 맛있고.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먹는 고추장이 더 매우리라... 아무리 그래도 농부들은 너무 고생이 많다..쩝.
혼자라는게 이런게 참 좋구나. 내생각에 맘껏 빠져들 수 있고 그 생각의 꼬리가 처음과는 사뭇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되는것... 오히려 맘껏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낼수 있는것....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은지라 산길이 미끄럽다. 발가라게 잔뜩 힘이 들어가게 걷다보니 시선은 자연 땅에 박혀있다. 땅만 보고 올라가다 그만 꽝~~ 멀쩡히 서있는 소나무에 술취한 사람처럼 냅다 머리를 들이 받았다. 아픈것 보다.... 어이가 없어서...조금 창피해서 혼자 피식~~ ^^ 혼자 걷는다고 내 발만 쳐다보면 안되는거구나.. 앞사람의 발도... 주위의 나무들도 둘러봐야겠구나.... 머리를 한대 얻어맞고서야 비로서 깨닫는다.
집에서 출발한지 45분만에 정상에 도착. 동행이 있을때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이다. 동행과 보조를 맞출 필요없이 걷다보니 나때문에 뒤쳐진다거나, 나때문에 동행이 힘들어하거나. 그런 상황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만 가면 되는 것... 혼자서 오르는 산행의 또하나의 장점.
정상에 서니 대전시내가 다보인다 불어오는 바람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것이 아~ 정상이구나. 넋놓고 그냥 바라만 본다. 보고.. 또 보고... 제법 사람들이 많다. "대전도 참 좁아" "제일 높은 건물이 어떤 건가?" "3단지가 제일 크구나" "우리집 저기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장 큰것, 가장 많은것, 건물과 내집에 대한 얘기들이다.
그곳에서 벗어났으면 그곳을 잊어도 좋으련만... 지붕에 올랐으면 사다리를 잊고, 달을 쳐다봤으면 손가락은 잊어도 좋으련만... 떠나왔어도 제 자리부터 확인하는 사람들.
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산정상에 오르면 뛰어내리고 싶단 생각을 한다. 어느영화에서처럼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것 같은... 끝도 없이 떨어지기만 할것 같은 느낌. 그런데 여기선 뛰어내려봐야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머리가 깨진채로 누워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나도 별 수 없군... 그치만 어쩔수 없이 거기에 내 발목이 묶여있으니... 오이디푸스처럼 발목이 묶인 채 버려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발목에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단지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때문에 그 상처가 보이질 않을뿐... 모든 상처에선 향기가 난다는데.. 내 발목에서도 향기가 나겠지... 또 이렇게 엉뚱깽뚱하게 끌고가다 합리화로 끝을 맺는군...쩝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하늘과 맞닿는 것은 건물도, 길도 아닌 산이다. 결국 우린 그렇게 산속에 살고 있다. 처음부터 쭉- 산중에 살고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산에 대한 목마름을 간직한 건... 한뼘의 내 누울자릴 위해 깎아내고 다지고... 그렇게 사라진 산에 대한 그리움이 삶의 시작을 위해 빠져나온 어머니 뱃속에 대한 기억할 수 없는 향수처럼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가 생각한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했던가. 산이 거기 있고 내 마음이 거기 있는데 몸이 거기 없으니.. 몸은 마음이 있는 곳에 둬야 하는 법. 그래서 산에 오른다.
작년 선운산에 오르며서 다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때 난 무엇때문에 그런 다짐을 했었지?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 어느 정도나 지켜왔을까?
오늘 산정상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천번을 감싸고 천번을 바라보자"고 다음 산행에선 이 다짐을 왜 했는지.. 어느정도나 지켜왔는지 다시 되새겨 보리라.. 그리고 꼭 자신있게 그에 대한 대답을 찾으리라.
산을 내려온다.
2002년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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