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하고싶어.

사이와 희망... 주절주절

스푸트니크! 2004. 4. 14. 14:17
어제는 하루 내내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했다.

쌀쌀하다 싶어 가디건을 입으면 답답하고,

그렇다고 가디건을 벗으면 춥고,

온풍기 온도 1도를 올리면 덥고,

다시 1도를 내리면 춥고...

21도에서 22도 '사이'에서 온풍기를 계속 붙들고 있다.

21도와 22도 사이의 온도..

말하자면 21.5도나 21.7도 뭐 그 쯤의 온도는 없을까..싶어 온풍기를 노려보고만 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사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건 처음부터 없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은 없는 지도 모른다.

'물과 물고기 사이에 사이가 없'듯이 말이다.



21도이건 22도이건 중요한 건 그 숫치가 아니며

그 안에 숨어있을 사이의 숫자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손에 잡히지 않아서, 몸으로 체험할 수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처음부터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처럼...

단지 그 사이에 뭔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 낸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없는 그 것이,

어딘가엔 분명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살아가고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걸 어딘가 있을 오아시스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눈물마져도 말려버릴 듯한 건조함과,

남녀간의 사랑보다 뜨거운 태양과,

내 심장보다 퍼석한 모래와,

숨이 턱 막히는 그 공포의 공간과,

지구 위에 나 밖에 없다는 근본적 고독과의 조우때문이다.

사막 그 자체의 분명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오히려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것이 그 것이 사막에 있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마치 사막에서 원 없이 헤매이다 온 사람 같다. 그저 봄날 한 때 불어오는 황사에서 사막을 맛 볼 뿐인데도 말이다.)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오아시에대한 갈망이

사막 한 가운데의 뜨거운 태양과,

질식할 듯한 무한의 공간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좌절과의 대결에서

다리에 심지를 박듯,

심장에 불을 지피듯,

희망이라는 환각제를 마시게 하는 것이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선물한 상자 안에도 희망은 가장 깊숙한 나중에 들어있는 걸 보면,

그 마저도 하마터면 상자 안에 영영 갇혀있을 뻔 했다는 걸 보면

그 것의 실체에 대한 허탈함이 더해진다.



살면서 수도 없이 농락당하고, 배신당하고, 좌절하면서도

끝끝내 놓아버리지 못하고 어느 '사이'엔가 분명 있으리라고

되뇌이고, 되뇌이고, 또 되뇌이고..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암기해 버리고

결국엔 존재하는 것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가증스럽다.

희망이여.

수 많은 '사이'들이여.



인간이란 진정 어리석은가,

아니면 과연 현명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