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날 나날.

스푸트니크! 2004. 4. 21. 11:40
이사를 하고 아무리 구석구석 청소를 해도 없어지지 않는 냄새가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집의 냄새일테지요.

영 신경에 거슬리는데..

언니는 서서히 너의 냄새로 채워나가라..그러더군요.

그러나 이놈의 성질머리로는 당최 참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향이 가장 진하다는 허브화분을 두개 사서 하나는 방에, 하나는 현관에 두었습니다.

좁은 방은 금새 허브향으로 꽉 차더군요.

기분까지 맑아졌습니다.

그런데 제법 넓고 구석이 많은 현관은 허브화분 하나로는 턱도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낸다는 것이 향수를 허브에 뿌려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몹쓸 짓인지요.

그런 짓이야 말로 진정 허브를 죽이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심하게 툭 건들여지고는 외면당한 우츠프라카츠야..

하마터면 가련하게 남의 향을 뒤집어 쓴 채 시름시름 죽어갈

우츠프라카츠야를 만들 뻔 했습니다.

애정어린 손길과 사랑으로 내 집의 냄새를 새로 만들어 줄

튼튼한 우츠프라카츠야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요.

내 취향에, 내 구미에, 내 목적에 맞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타인에게 억지스레 뭔가를 뒤집어 씌우면서 살아오진 않았는지

오늘도 반성합니다.

꽃이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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